「전쟁과 언론」시리즈와 병행해 「전쟁과 음악」의 연재를 개시합니다. 음악은 제가 할 수 있는 분야이면서도 ‘전쟁’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좀 더 흥미롭게 접근시키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제목을 통해서 ‘저 사람이 음악을?’이라는 의문을 가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조만간 저의 음악감상 편력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 응 –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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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프랑스군에 의한 무차별 진압, 불법 처형, 잔인한 고문 등은 수없이 일어났다. 이 같은 전쟁이 8년이나 계속됐다. 전후 공식 집계에 따르면 알제리 측 사망자가 30만 명, 프랑스 측 사망자가 3만 명으로 추정된다.알제리는 끈질긴 투쟁 끝에 1962년 7월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차별과 배제는 끝나지 않는다. 종전 이후 프랑스 내에서는 알제리 전쟁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알제리의 저항이 시작된 날은 알제리 사건으로 불렸고 정규군 투입은 전쟁이 아닌 질서유지 작전으로 명명됐다.이처럼 함구령이 내려졌으니 앙리코 마시아스 가문처럼 알제리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차별과 학대를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앙리코 마시아스는 알제리 태생도 아니고 스페인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프랑스 내에서 알제리 전쟁 참전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부터였으며 알제리 전쟁이라는 용어가 공식 채택된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인 1999년 6월부터였습니다.앙리코 마시아스가 ‘녹슨 총’을 발표한 것은 1984년입니다. 프랑스 국내에서 알제리 전쟁의 기억이 되살아난 시기와 맞물리는 겁니다. 앙리코 마시아스는 어린 시절 겪었던 알제리 전쟁의 참상을 노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이는 알제리 전쟁을 발설할 수도 없었던 냉혹한 시대에 반전 내용으로 포장해 전쟁의 기억을 소환한 것입니다. 이는 녹슨 총을 단순히 반전가로만 들을 게 아니라 알제리 국민의 피나는 절규로 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알제리와 프랑스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와 비슷하지요? 일본이 그렇듯 프랑스도 가해자로서 자신들의 만행과 차별을 애써 잊으려 한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쳤던 프랑스 혁명의 나라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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